북조선(북한)측 주장의 문제점

북조선(북한)측 주장의 문제점

내각 관방 납치문제대책본부 사무국

북조선(북한)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 (생사 불명의 납치피해자 12명 중)8명은 사망, 4명은 북조선(북한)에 입국한 사실이 없음.
  • 생존자 5명과 그 가족들은 송환했음. 사망한 8명에 대해서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유골(두명분)도 이미 반환했음.
  • 일본측은 이미 사망한 피해자를 다시 살려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음.

그러나 이러한 북조선(북한)측의 주장에는 아래와 같은 많은 문제점이 있으므로, 일본정부는 북조선(북한)측의 주장을 절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일본정부는 납치 피해자의 ‘사망’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납치 피해자가 생존해 있다는 전제 하에 피해자의 즉시 귀국과 납득할 만한 설명을 북조선(북한)측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는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 8명의 ‘사망 원인’에는 자연사라고 볼 수 없는 경우가 지극히 많은데다가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음

8명의 대부분이 20~30대의 젊은 나이에 가스중독, 교통사고, 심장마비, 자살 등 자연사라고는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어, 이러한 사실 자체도 부자연스러운 데다가 다음 (1)(2)와 같이 이들 사망 사실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

8명에 대한 북조선(북한)측 설명(성명, 사망 연령, 사망원인)

이들 중에는 일본에서는 수영을 못했던 납치피해자가 긴급출장 중에 해수욕을 하러 가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안(이치카와 슈이치씨), 심각한 병력이 없는 건강한 20대 여성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안(마스모토 루미코씨)도 포함되어 있음. 아울러 이러한 부자연스런 사망원인들을 증명하는 증거가 전혀 제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북조선(북한)측 주장의 신빙성을 더욱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음.

1.납치피해자의 유해가 전혀 존재하지 않음

북조선(북한)은(요코타 메구미씨와 마쓰키 가오루씨를 제외한)6명의 유해가 북조선(북한)내 3곳의 묘지에 매장되었으나 모두 호우로 유실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일본측에 두 명(요코타 메구미씨와 마쓰키 가오루씨)의 유골이라고 제공된 것에서는 감정 결과, 본인의 것과는 다른 DNA가 검출되었다.

2.사망을 증명하는 신빙성 있는 서류가 전혀 존재하지 않음

‘사망확인서’는 2002년 일본정부 조사단 방문 시에 급거 작성된 것. 또한 교통사고 기록에는 피해자의 성명을 가리키는 부분이 없다.

(사망확인서)

(사망확인서)

2002년에 제출된 것. 괄호 안은 북조선(북한)측 설명에 의한 ‘사망’일 및 장소. 사망 시기와 장소가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같은 병원에서 발행되었으며, 직인도 같음. 2004년에 북조선(북한)은 이들 확인서가 그 당시 급거 작성된 사실을 시인함.

(교통사고기록)

(교통사고기록)

몇 군데가 지워져 있고, ‘사망자’의 성명을 가리키는 부분이 없으므로 ‘다구치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마쓰키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음.

2. 북조선(북한)측 주장에는 부자연스럽고 애매한 점이 많고, 일본측 수사에 의해 판명된 사실과 귀국한 피해자들의 증언과도 모순된 점이 많아 설명 전체에 대한 신빙성이 의심됨

1. 요코타 메구미씨

메구미씨의 ‘사망’에 대한 북조선(북한)측 설명에는 사망일 변경과 ‘유골’의 보관방법 등 애매하고 부자연스런 점이 지극히 많다.

요코타 메구미씨[13, 니가타현]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자살’이라고 주장)
* 북조선(북한)에 딸(김혜경 씨)이 있음.

(이하 납치피해자 사진 아래의 [ ]안은 납치 당시의 연령과 실종 장소.)

(가)전 남편과 담당의사는 처음에 메구미씨가 ‘1993년’에 사망했다고 증언했었으나, 그 후 귀국한 납치피해자의 발언에 의해 메구미씨가 93년 이후에도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 언론을 통해 밝혀지자 두 사람 모두 사망일을 ‘94년’으로 정정했다.

(전 남편 김영남씨가 메구미씨의 부모님 앞으로 보낸 편지)

(전 남편 김영남씨가 메구미씨의 부모님 앞으로 보낸 편지)

메구미씨가 1993년에 사망했다고 적혀 있으나, 실제로는 적어도 1994년까지 생존해 있던 사실이 확인되어 있음. 이 모순에 대해 전 남편 김영남씨는 ‘착각’이었다고 설명함.

또한 이 편지가 전달된지 3년반 이상이 지난 2006년 6월에 일본의 민간단체가 이 편지의 필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전 남편 감영남씨는 동년 7월 평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 편지가 대필이었다는 사실을 시인했음.

더구나 이 편지에서는 본명이 아니라 ‘김철준’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음.

(담당의사가 작성한 ‘사망확인서’)

(담당의사가 작성한 ‘사망확인서’)

메구미씨의 사망일이 1993년 3월 13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적어도 1994년까지 생존해 있던 사실이 확인되었음.

(나)병원 측의 기록에 수정한 흔적과 오류가 있어 신빙성이 낮다.

(‘환자 사망 대장’의 표지)

(‘환자 사망 대장’의 표지)

2002년에 북조선(북한)측이 제시한 것. ‘입퇴원’이라는 부분을 ‘사망’으로 수정한 흔적이 보임.

(‘환자 사망 대장’ 중 관련 부분)

(‘환자 사망 대장’ 중 관련 부분)

북조선(북한)이 메구미씨라고 주장하는 여성은 해당 번호가 ‘3-239’로 되어 있으나 이는 그 다음 줄의 사람과 같은 번호.

(메구미씨의 ‘진료기록부’)

(메구미씨의 ‘진료기록부’)

2004년에 북조선(북한)측이 제시한 것. 메구미씨의 당시 연령과 분명히 다른 부분이 몇가지 확인되었음.

(다)이미 다른 여성과 재혼한 전 남편 김영남씨가 전처인 메구미씨의 사망 3년 후에 병원 뒷산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유해를 파내고 화장한 뒤, 유골을 보관해 왔다는 설명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럽다.

김영남씨 자신이 한국인 납북자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음.)

2. 다구치 야에코씨, 하라 다다아키씨

일본인으로 위장해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을 일으킨 북조선(북한) 공작원 김현희씨의 증언에 의해 다구치 야에코씨가 김현희씨의 교육을 담당했던 사실이 밝혀졌으나, 북조선(북한)은 이와 같은 사실과 사건 자체에 대한 관여를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다구치씨는 귀국한 납치피해자에게 ‘1981년부터 1983년에 걸쳐 ‘옥화’(주:김현희씨의 별칭)라는 여성 공작원과 같이 생활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북조선(북한)은 다구치씨가 1984년에 다른 납치피해자 하라 다다아키씨와 결혼, 1986년 7월에 남편 하라씨가 병사하자 정신적인 위안을 찾기 위한 여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귀국한 납치피해자들이 1986년 7월 무렵까지 다구치씨와 같은 초대소에 있었으나 다구치씨가 결혼한 사실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다구치씨가 남편(하라씨)사망 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북한측 설명의 신빙성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위와 같은 사실에서, 북조선(북한)측 주장에는 다구치씨가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실행범의 교육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다구치 야에코씨[22, 불명]

1978년6월경 납치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

(다구치 야에코씨와 리은혜)

왼쪽은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실행범인 김현희씨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여성 ‘리은혜’의 몽타주. 수사 결과 리은혜는 다구치씨와 동일 인물로 추정됨.

하라 다다아키씨[43, 마야자키현]

1980년6월 중순 납치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간경변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실행범 김현희씨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1987년11월, 일본인 명의의 여권을 가진 북조선(북한)공작원 김승일,김현희씨가 바그다드발 서울행 대한항공기에 시한폭탄을 설치하여 상공에서 폭파시킨 사건. 김현희씨의 진술 등에 의해 실행범 2명은 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으로,‘(이듬해의)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대한항공기를 폭파하라’는 지령을 받아 범행을 일으킨 것으로 밝혀졌음.

3. 이치카와 슈이치씨, 마스모토 루미코씨

북조선(북한)은 ‘마스모토씨와 이치카와씨가 1979년 7월에 결혼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귀국한 납치피해자의 증언에 의해 마스모토씨가 1978년부터 1979년 10월까지 이치카와씨가 아닌 다른 납치 피해자와 생활하고 있던 것이 밝혀져 있어, 적어도 당시 두 사람이 결혼했던 사실은 없다.

이치카와 슈이치씨[23, 가고시마현](왼쪽),

마스모토 루미코씨[24, 가고시마현](오른쪽)

1978년8월12일 납치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

4. 이시오카 도오루씨, 마쓰키 가오루씨, 아리모토 게이코씨

‘요도호’ 납치범 전처의 증언 등에 의해 ‘요도호’ 납치범과 그 관계자가 3명의 일본인 납치사건에 관여했다고 추정되고 있으나, 북조선(북한)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북조선(북한)측의 주장은 북조선(북한)이 은닉하고 있는 ‘요도호’ 납치범이 범죄행위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다.

이시오카 도오루씨[22, 유럽](왼쪽),

마쓰키 가오루씨[26, 유럽](오른쪽)

1980년5월경 납치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이시오카씨가 ‘가스 중독 사고로 인한 사망’, 마쓰키씨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

아리모토 게이코씨[23, 유럽]

1983년7월경 납치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가스 중독 사고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

(‘요도호’ 납치 사건)

1970년 3월 31일 무장한 9명이 일본항공 351편(통칭 ‘요도호’)을 납치하여 북조선(북한) 비행장에 도착한 후 북조선(북한)당국에 투항한 사건.

일본 수사당국은 ‘요도호’ 납치범이 유럽에서의 일본인 납치에 깊이 관여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북조선(북한)내에 머물고 있는 ‘요도호’ 납치범들 중 우오모토(舊姓;아베)기미히로를 아리모토씨 납치의 실행범으로, 또한 ‘요도호’ 납치범의 처인 모리 요리코, 와카바야시(舊姓;구로다)사키코를 이시오카씨 및 마쓰키씨 납치의 실행범으로 ICPO를 통해 국제수배 중 임.

5. 구메 유타카씨, 다나카 미노루씨, 마쓰모토 교코씨, 소가 미요시씨

북조선(북한)이 입국을 부정 혹은 입국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 4건에 대해서는 수사결과 모두 북조선(북한)의 관여가 명백하므로 이들의 소식을 전혀 모른다는 북조선(북한)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구메 유타카씨[52, 이시카와현]

1977년9월19일 납치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입국을 부인)
구메씨가 북조선(북한)의 지시를 받은 보조공작원(재일조선인)에 의해 해안까지 유인되어 다른 북조선(북한)공작원에게 인도되었다는 사실이, 납치 당시 현장에서 체포된 이 보조공작원의 진술에 의해 밝혀졌음.

마쓰모토 교코씨[29, 돗토리현]

1977년10월21일 납치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입국을 부인)
납치 현장의 목격자 증언 등으로부터 북조선(북한)에 의한 납치인 것이 명백함.

다나카 미노루씨[28, 효고현]

1978년6월경 납치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입국을 부인)
관계자의 증언 등에 의해 다나카씨가 북조선(북한)의 지시를 받은 재일조선인의 감언에 속아 해외로 유인된 후 북한에 보내진 사실이 밝혀졌음.

소가 미요시씨[46, 니가타현

1978년8월12일 납치
– 생사 미확인(북조선(북한)은 입국을 부인)
납치 실행범인 여성공작원이 귀국한 납치피해자인 소가 히토미씨(미요시씨의 딸)에게 ‘미요시씨는 사도[佐渡]에 돌려 보냈다’라고 말한 사실이 확인되어 있으므로 적어도 실행범은 미요시씨의 당시 소식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임.

3. 납치 실행책임자의 처벌에 관한 북조선(북한)측 설명에는 많은 의문점이 있음

납치 실행책임자 2명을 처벌한 증거로서 북조선(북한)측이 제출한 재판기록 사본에는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 있고 납치에 관한 서술이 부분적이므로 납치 실행책임자가 처벌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이들이 처벌되었다는 1998년과 1999년 시점에서 북조선(북한) 당국이 납치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왜 2002년까지 일본인 납치의 사실을 계속 부인했었는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는 바, 이와 같은 점에서도 납치 실행책임자 처벌에 관한 북조선(북한)측 설명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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