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북한)에 의한 납치문제란

가족의 메시지

2010년 12월

마츠모토 쿄코(松本京子)씨의오빠 마츠모토 하지메(松本孟)씨의 메시지

쿄꼬,오빠다.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니?쿄코가 북조선에 랍치된지 33년이 되었지만,아직도 구해주지 못해 오빤 너무 미안할 뿐이다.

쿄코가 사라졌을 때,노부 씨가 6살 때였으니까 노부 씨는 올해로 39살이 되는구나.노부 씨는 도쿄에서 혼자지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노부 씨 일은 걱정안해도 돼.

가족들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그리고,어머니께서도 올해로 87세가 되셨어.몸은 건강하시지만,무릎이 안 좋으셔서 좀처럼 거동이 힘드셔.그래도,일상생활에는 그다지 지장이 없으시니까 앞으로도 건강히 계실 수 있을거라 생각해.쿄코도 항상 건강 조심하면서 잘 지내기를 바래.

그리고,노부 씨 밑에는 딸이 하나 있어.쿄코는 이 아이를 모르겠지만,올해로 27살이 된단다. 케이라는 이름인데 아주 귀여운 아이야.쿄코가 돌아오면 여자들끼리 재미있는 대화가 되지 않을까 싶으니까 기대해 보렴.그리고,항상 건강조심하면서 아프지 말고 힘내.우리도 가족모두가 힘을 합쳐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일본에 돌아올 수 있게 노력할 테니까 그 때까지 너도 힘내주길 바래. 오빠 부탁이다.

【2010년 9월에 수록됐음】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씨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横田滋)씨의 메시지

메구미,잘 지내고 있니?

올해 일본은 너무나 더웠는데 그쪽 북조선도 덥지 않았니?이번에 뜻밖의 사람을 만났어.북조선의 공작원이었던 김현희 씨인데, 메구미가 아직 결혼 전이라 생각되던 때 한번 만난 적이 있다면서,그때 메구미가 일본 오코노미야키같은 걸 만들어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어.그리고,그 때,일본땅을 제일 먼저 밟고 싶어하는 사람은 메구미와 타구치 씨인데 자기가 먼저 오게돼서 죄송하다며 눈물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는 마음이 아팠어.

그리고,작년부터 여기에 있는 타쿠야,테츠야,그 아이들도 다들 변함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최근 일이라면,작년 10월에 카와사키에 있는 평화관이라는 곳에서 메구미 코너를 만들었는데,올해로 꼭 1년이 된단다.그래서,올해도 10월2일에 랍치당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취지로 카와사키 시민들의 모임이 열릴 예정이야.카와사키뿐만 아니라, 니가타현,니가타시,그리고 니가타일보가 주최해서 매년 니가타현의 큰 건물에서 현민집회를 열기로 되어 있는데.올해도 열릴 예정이야.

그리고,9월26일에 요시다 나오야 씨가 자선 콘서트를 해 주시는데,그것과는 별개로 작년 가을에 메구미 반 친구들만으로 자선 음악회를 열어 주었어.그 음악회에서는 광고 원고를 쓰거나 전단지를 만들거나 표를 만들거나하는 여러가지 일을 전부 다 반 친구들이 해 주었어.피아노 반주를 할 사람만 없었기 때문에 요시다 씨의 피아노 반주 분이 자원봉사로 와 주셨어.

그리고,메구미를 소재로 키노쿠니야 홀에서 연극을 했어.그 때,니가타에 있었을 당시의 메구미 역은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맡아했었어.그리고,어른이 되고나서의 메구미는, 이건 (어른이 되고나서의 메구미는)어디까지나 상상이었지만,어른이 된 메구미 역활을 모집했더니 500명의 응모가 있었어.그 중에서 케이오대학의 문학부 1학년,지금은 2학년이 되었지만,그때, 그 학생이 합격을 해 메구미 역활을 맡았는데 아주 좋은 평판을 받았어.

그 이외에도 영화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있어.그리고,인형 죠루리라는,사람이 인형을 움직여하는 연극인데,준비가 거의 다 끝나가서 내년1월에는 완성될 것 같아.이건 케이세이아와노나루토라는, 어린이가 어른을 찾는 유명한 인형 죠루리인데,그걸 반대로 해서 어른이 어린이를 찿는 형태로 만들어 주시기로 했어.

그 외에도,나는 잘 모르지만,유명한 외국의 기타 연주가가 메구미를 위한 곡을 2곡 만들어 주시는 등,많은 일들이 연이어 생겨,모두가 하루라도 빨리 메구미가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이전에,이케다 리요코 씨의 「마나쯔니 다이쿠오 키쿠」라는 모임이 열렸는데,그 때 메구미가 돌아오면 꼭 이 합창단에 들어 왔으면 좋겠다면서 의상까지도 준비해 두었다며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 주셨어. 메구미가 정말로 돌아온다면 많은 사람들과, 지금까지 만나지 못할거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

도쿠시마에 갔을 때는 안나 쥰 씨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메구미가 정말 지금까지라면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치도 못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많은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있어.하루라도 빨리 돌아와.기다리고 있을게.

【2010년 9월에 수록됐음】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씨의 어머니 요코타 사키에(横田早紀江)씨의 메시지

북조선에 있을 메구미,잘 지내고 있니?

메구미가 사라지고 벌써33년이 흘러버렸어.

「다녀 오겠습니다」하고 현관을 나간,라켓을 들고 나간,그때의 메구미 모습이 정말 엄마 기억속에서는 마지막 모습이 되어, 너와 떨어져 지낸 이 오랜시간들이 이토록 내 가슴을 저미게 하는구나. 메구미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어떤 걸 먹고 있을까,이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 왔지만,많은 사실들이 밝혀지면서,메구미가 북조선에서 건강하게 있을거라는 걸 알게 되었어.

그리고,혜경 양이라는 너무 이쁜 아이가「할아버지,할머니」라고 텔레비전에서 우릴 불러줬어.정말,인생이란 신기하기 그지없구나.이렇게 슬픈 와중에도,메구미가 그 힘든 와중에도 이렇게 아이를 키워 이렇게 밝고 건강한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었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니?흰 블라우스를 입고 초대소 안에 앉아 있는 메구미를 봤을 때는 너무나 슬펐어.금방이라도 날아가 구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하지만,아무리 애를 써도 널 찾을 수가 없어서 엄만 오랫동안 너무 힘들었단다.그 오랜 시간,메구미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너무 슬퍼 혼자서 얼마나 울부짖었을까.

니가타현도 니가타시도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도 많은 메구미 친구들도 모두 메구미를 잊지 않고,꼭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매년 빠짐없이 큰 모임을 열어 주셔서,많은 니가타 분들과 많은 사람들이 널 구하기 위해 우리 이야기를 들으러 와 주신단다.

아빠와 엄만,74,78이라는 나이가 돼 버렸지만,마음은 아직도 젊으니까, 반드시 메구미를 품에 안아 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고 힘낼거야.강연회라는 모임을 열어 주셔서 일본의 모든 현을 방문하고 왔어.많은 현을 방문하며,천번도 넘는 강연을 메구미를 위해,그리고 많은 랍치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한 신념으로 온 힘을 다해 우린 이야기했어.일본 전국에 계신 분들은 이런 끔찍한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치도 못하셨지만「아~이런 일들이 다 사실이었군요.」라며 모두들 지금은, 어서 메구미를 구하자며 하나가 되어 도와주시고 계셔.

니가타의 청년회의소라는 곳에서 「가족애」라는 아름다운 책도 만들어 주셨어.그리고,메구미가 초대소에서 찍힌 흰 블라우스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 주셨어.그리고,그 때,우리가 함께 지냈던 시절,사라졌을 때의 기억,메구미가 정말 거기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하며 다같이 괴로워하던 때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주셔서,많은 고등학생,중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고등학교에 이 책들을 보내 주셨어.

지난 번에 도쿄도청을 방문했을 때도,이시하라 도지사에게 부탁하고 왔어.정치인 분들도 각자 열심히 랍치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

엄마와 메구미가 니가타 정원에서 코스모스 꽃을 보면서 나눴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니?네가 말했었지.「엄마,엄마가 키운 코스모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네.꽃이 크고 줄기도 튼튼해.원래 코스모스는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인데 신기하다」며 웃었던 일을 기억하니?엄만,그 추억을 떠올리며 시로 적었단다.그리고,그 시에 곡을 붙여 주셔서 너무나 근사한 곡이 되었어.모두들 그 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단다.우리 아이들이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시며,일본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열심히 도와주시려고 하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지만,반드시,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한 북조선에 있는 사람들을 꼭 자유롭게 해줄거라는 신념만은 버리지 않고 계속 맞서나갈거야. 절대 병 같은거 걸리지 말고.병이 나 쓰러지면 우린 만날 수가 없잖아.우리들도 최선을 다할테니까.꼭 건강 조심하고 혜경 양과 함께 꼭 돌아와.반드시 구해줄게.건강하게 있어야 한다.

【2010년 9월에 수록됐음】

타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의 오빠 이이즈카 시게오(飯塚繁雄)씨의 메시지

일본에 있을 때는 이이즈카 야에코,그리고 다구치 야에코.북조선에 가고나서는 어떤 이름이 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들리는 바로는 고혜옥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도 들었어.

물론 난 이이즈카 시게오.내 여동생 당시는 다구치 야에코.꼭 이 방송을 들어주면 좋겠다.그리고,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다른 분들이 계신다면 꼭 다구치 야에코에게 전해 주십시오.

우리 형제는 지금 남은 여섯 형제가 너의 구출을 위해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구출활동에 전념하고 있어.

야에코도 22살 때 그곳에 갔으니 벌써 30수년.만약 지금 우리가 만난다면 옛 모습은 남아 있겠지만,벌써 54,5살이 되어 있겠구나. 그 얼굴을 빨리 보고 싶구나.야에코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보고 싶구나.우리 형제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었기 때문에 난 나이가 든 야에코 얼굴이라도 절대 금방 알아 볼 수 있어.물론, 너도 우리 형제 얼굴을 잊지 않고 있겠지.

특히 야에코가 잊을 수 없는 것은 니가 일본에 남겨둔 아이들. 당시 1살이었던 코이치로.그리고 2살 반이었던 아야.니가 사라지고 벌써 30년 넘게 흘렀으니 이제 코이치로가 33살이 된단다.둘 다 우리 형제들이 돌보았는데 나름대로 잘 커서 지금은 훌륭한 성인이 되어 생활하고 있어.아야는 결혼하고 얼마전에 아이가 태어났어.그러고 보니 야에코가 할머니가 되었구나.그런 사실도 있었어.그리고,코이치로는 결혼은 아직인데 일에 있어서는 상당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 그 일에 전념하면서 너의 구출을 위해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각 집회에서의 강연 등을 포함해 일본 국민들에게 호소하며 국민들이 의식적으로 계속해서 정부에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그런 여론 조성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리고 지난번에 니가 잊을 수 없는,니가 교육한 김현희 씨.당시에는 이름을 불러서는 안된다는 상황도 있었을 거라 생각되는데,그 때 아마 옷카라고 불렀었지.그래서 너는 옷카의 오를 빼고 다마 짱,다마 짱이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걸 들었어.실은 그 김현희 씨,옷카와, 한국의 부산,그리고,이번 7월에는 일본에서 만났어.그리고,그 때 코이치로와 이야기하며 당시의 야에코의 상황,모습,말하자면「어머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그게 궁금해 코이치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김현희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또,김현희 씨도 만약 여기에 어머니가 계시다면, 야에코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하고 말을 했어. 김현희 씨는 한국에 오고나서 열심히 랍치피해자들의 일,특히 일본의 랍치피해자들의 일에 협력하며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어.

이 랍치문제라는 것도 이젠 너무 오래 되어버렸구나.내가 걱정하고 있는 건 야에코의 몸,건강 상태야.또한 먹는 건 어떻게 하고 있을까하는.입을 옷도 마찬가지야.니가 어떻게 그곳에서 해나가고 있을 지,살아가고 있을 지가 너무나도 걱정이야.하긴,아까 이야기한 다마 짱,김현희 씨가 「야에코 씨는 절대 살아 있어요」라고 말했듯이 물론 우리 가족 그리고 일본 정부도 니가 절대 살아 있을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구출활동에 전념을 다하고 있어.

역시 우리로서는 야에코의 정보를, 그리고 다른 피해자분들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고 싶다는 그런 상황이지만 일단은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 또한, 생활 환경은 어떤지 그걸 우선 알고 싶어.그리고 언젠가 가까운 시일 내에 그 난관을 극복하고 실제로 니가 이 그리운 일본땅에 발을 놓는 그런 순간을 우리는 매일 매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꿈꾸며, 일본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니 모습만을 간절이 기다리고 있어. 일본 국민들도 모두 그걸 간절히 바라고 있어.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랍치피해자 가족들은 항상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매일 매일 어떻게 하면 구출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정부에 호소하며 그리고 또 일본 국민들에게도 어떻게든 힘을 빌려달라고 호소하면서 노력하고 있어.

어떤 상황에 놓여져도 우리 가족들,다른 가족들도 포함해 피해자들을 절대로 탈환하자는 그런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그 부모,또는 형제,아이들을 포함해 가족들을 되찾아온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젠 조금만 있으면 될 거야.넌 뭐니뭐니 해도 건강히 있어줘야 돼.그리고 기다리고 있는 우리 가족도 건강하게 있지 않으면 안되겠지.

만약 니가 돌아오면 여러 면으로 보살펴 주고 싶다.그 북조선에 빼앗겨버린 소중한 인생.가장 행복했었을 시기의 니 인생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그 때의 기억을 몇배로 만들어 일본에서의 생활을 가족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좋을지,그것까지 생각하고 있어.

일단 지금은 건강히 있어줘.힘든 건 언제까지인지,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건지 하는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아.우리도 그걸 언제나 마음에 걸려하며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절대로 포기는 안해.그곳에 있는 피해자들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식과 행동에 있어서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일념으로 지금,해결,이 문제의 해결에 집념하고 있어.

반드시 이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 올거야.이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면 일본 역사의 한 패이지에 도 상당히 큰 성과로 기록하게 되겠지.그리고 또 두번 다시 이런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태세도 갖추게 되겠지.그런 생각도 하면서 랍치피해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올 수 있기를 항상 생각하고 있어.정부 태세도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랍치문제대책본부라는 기구를 설치해 이 문제에 관해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구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며 또는 세계 각국과 협력하여 특히 한국과도 협력하여 이 랍치의 실태 또는 생존여부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어.

앞서 말씀드렸듯이,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이 문제에 관한 정보 제공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일본 정부에게 정보를 주십시오. 북조선에서 온 아마 도망쳐 오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겁니다. 그런 정보를 얻은 후에 저희들은 그것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어떻게 움직일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무엇보다 피해자들이 건강하게 잘 있다는 그런 정보가 우선은 필요합니다.

랍치피해자분들이 어서 일본으로 돌아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금까지 겪은 고생 또는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그런 이야기가 너무나 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돼.인내라는 건 잔혹한 것일지도 모르지만,참으면서 그 시기를 기다려.절대로 포기하지 마.「일본이 도와주지 않아.이젠 난 포기했어.」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고 힘을 내길 항상 바라고 있어.형제들도 같은 생각이야. 앞으로도 몇번 이 방송이 나갈 테니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일본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도와준다.」라는 마음을 꼭 가지길 바래.

그럼 또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고 싶구나.그럼 건강해야 해.

【2010년 10월에 수록됐음】

이치카와 슈이치(市川修一)씨의 형 이치카와 켄이치(健一)씨의 메시지

슈이치,잘 지내니?형이야. 슈이치와 헤어진지 32년,정말 너무나 길고 괴로운 세월이야.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냈던 그 즐거웠던 시절도 슈이치가 북조선에 랍치당한 그 날부터 우리 가족은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마음속으로 기뻐할 수 없게 되었어.랍치를 지시한 최고권력자가 너무 밉다.

슈이치,기억나니?슈이치가 덴덴공사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아버지와 셋이서 마셨던 그 맥주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단다.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부자 셋이서 마실 수 있겠구나 하며 형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었어.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정말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집 옆에 있는 벚꽃나무도 많이 자라 ,매년 많은 꽃을 피우고있어.그 벚꽃도 슈이치의 귀국을 줄곧 기다리며 빨리 슈이치에게도 꽃을 보이고 싶어하는 그런 모습이야.

남의 나라에 와서 국민을 채어 가다니.그런 행위가 버젓이 존재한다는 게 너무 당치도 않은 이야기라 절대 용서가 안돼.일본 국민들도 세계각국의 사람들도 북조선의 야만적인 행위에 대해 분노를 표하고 있어.이렇게 잔혹하고 비도덕적인 랍치를 지시한 이상은 반드시 천벌을 받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빤한데 말이야.

자유도 없고 항상 감시받고 있는 생활.겨울은 극한의 기온에서 추위와 싸워가야만 하는 그곳의 생활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한시라도 빨리 널 데려와 따뜻한 가고시마에서 여유롭게 지내게 해주고 싶다.

슈이치,어떤 상황에 놓여도 절대 지면 안돼.마음을 굳게 먹고 힘내면,반드시 일본에 돌아올 수 있는 날이 올거야.절대 희망을 버리지마.

슈이치,힘내.

북조선에 계신 여러분.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과 마음을 열면,반드시 모든 인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어서 지금의 불만에서 깨어나세요.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에 자본을 쏟아붓고,인민들에게 식량배급도 하지 않는 그런 정치를 없애지 않으면 인민모두가 굻어 죽습니다.세계여러사람들이 여러분들과 마음을 열고 싶어합니다.

【2010년 9월에 수록됐음】

이치카와 슈이치(市川修一)씨의 형수 이치카와 류코(市川龍子)씨의 메세지

슈우짱,잘 지내고 있니?누나야.

슈우짱이 강제로 북조선에 랍치당한 지 3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  

슈우짱이 얼마나 슬프고 억울한 심정으로 지내왔을까. 슈우짱의 원통한 마음을 생각하면 정말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32년 전 일본 추석 세일 때 너가 도와준 가게 말인데,시대의 흐름에는 이기지 못하고,또 집 앞에 도로확장을 하게 돼서 그걸 계기로 가게는 문을 닫게 되었어.

정말 너가 많이 도와줬는데.참 고마웠어.그날이 슈우짱의 마지막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어.

우리집도 새로 지어 슈우짱 방도 만들어 놨어.슈우짱 책장과 커피기구,컵도 준비해 뒀어.  

도겐노오카(登見丘)를 기억하고 있니?초등학교 소풍 때랑 중학교,고등학교 때 자주 올라가 가게나 우리집을 자주 내려다보곤 했었지.마당에서 도겐노오카를 보면서, 슈우짱도 다시 한번 올라가보고 싶어할텐데하며 항상 누나 혼자 생각하곤 해.  

슈우짱한테도 아이가 둘 있다고 들었는데 손자는 몇 명 있을려나.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다.  

동급생인 하나무레 카오르(花牟礼薫)씨도, 타카야마 코(高山恒)씨 도 한시라도 빨리 널 구해,만나고 싶다며 아주 열심히 구출활동을 해 주고 있어.반드시 재회의 꿈을 이루도록 하자.  

일본은 조바심과 안타까움으로 힘들어하는 몇백명이나 되는 일본인을 30년이상이나 아직도 구출하지 못하고 있어.슈우짱도 참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지 않으려나 걱정이지만,우리도 이젠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정부를 움직이는 투쟁을 형과 함께 해 나가고 있어.  

미안해.정말 미안해.반드시,반드시 구해줄게.이치나리(市成)도 추운 곳이지만,그 이상으로 북조선은 추운 곳이겟지?극한 기후 속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면 우리의 몸도 마음도 얼어붙을 것 같아.항상 건강만은 조심하면서 반드시 극복해야돼.강한 일념만 있으면 뭐든지 극복할 수 있어.마음 강하게 먹고 있어야돼.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말고.힘내주길 바래.  

또 기회가 있으면 단파방송으로 소식 띄울게.  

슈우짱,힘내.누나도 힘낼게.  

【2010년 9월에 수록됐음】

마스모토 루미코(増元るみ子)씨의 언니 히라노 후미코(平野フミ子)씨의 메시지

마스모토 루미코씨. 루미코, 허정실씨, 어떻게 지내니?

언니야.잘지냈니? 모두가 널 걱정하고 있어.

원래 넌 밝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니까 그곳 사람들과도 즐겁게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향인 일본에 돌아올 수 없는 게 괴롭지. 벌써 32년이나 흘러 버렸네. 아버지가 8년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무릎이 안 좋아지셔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계셔.「루미코를 만날 때까지는 건강해야 한다」고 하시며서 재활 치료를 열심히 받고 계셔. 갑자기 딸을 뺏기고 생사도 모른다는 사실은 부모에게 있어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일일거야. 그런속에서도 가족모두 열심히 살아 왔단다. 루미코도 아마 같은 심정으로 지내고 있겠지? 언젠가 반드시 일본땅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언닌 믿고 있어.

작년에 루미코 호적을 회복했단다. 호적을 말소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받아들이실 수 밖에 없었을 거야. 호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북조선 공작원 손에 악용당하면 안된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루미코가 절대 살아 있다는 희망을 버린 적은 없었단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호적을 회복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편하게 눈을 감으실 수 있었을까.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일본에 돌아올 것만 생각하며 희망을 버리지 말고 슈이치 군과 함께 가족 모두가 힘내서 끝까지 살아있어줘.

또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구나. 그곳 생활은 너무 힘들거라고 생각해. 몸은 어때? 건강하니? 밥은 잘 먹고 있어? 아플 때 치료는 받을 수 있니? 그게 제일 걱정이야.

매스컴등의 보도로 북조선의 정보를 알 수 없는데 요즘은 그 정보조차도 줄어버렸어. 그러던 중에 김정일의 건강악화로 후계자가 결정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단다. 북조선 정세가 어떻게 바껴갈 지 걱정이지만, 뭔가 큰 움직임이 있을 지도 몰라. 우리는 그 때가 찬스라고 생각하고 있어.

너 주의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치켜봐.

일본에 돌아오면 온천에 가자. 어디로 갈까 이야기해 봤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고향인 이부스키가 좋을 거 같아. 네가 푹 쉬면서 자유를 맘껏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웅대한 가고시마의 사쿠라지마도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단다.

무엇보다 일본국민 모두가 너희들의 귀국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 일본국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돌아와야해. 기다리고 있을게.

언니.  

【2010년 10월에 수록됐음】

소가 미요시(曽我ミヨシ)씨의 딸 소가 히토미(曽我ひとみ)씨의 메시지

어머니 히도미에요. 건강하십니까?어디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어머니하고 헤어진지 32년이 지났습니다. 네가 일본에 온지 8년이 지나는네도 어머니에 대한 소식은 하나도 모릅니다.「언젠인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언제 만날 수 있을가」하고 매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보는 시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어머니와 나이 같은 사람들을 돌보면서 어머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지, 자기 할 것을 자기 혼자서 다 하고 있는지 언제나 생각하고 일합니다.

우리 집 이야기를 할게요. 남편은 70살 지났는데도 건강하고 상점에서 과자를 팔고 있습니다. 첫째 여자 미가는 보육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 즐겁다고 이야기합니다.둘째 여자 브린다는 같은 마을에 있는 술상점에서 판매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힘들다고 하지만 즐겁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생 도미고도 때떄로 만납니다. 건강하고 아이들도 크게 자랐습니다.

어머니,우리 가족 동생 가족들도 하루 빨리 사도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꼭 구원할테니 건강해서 기다리세요. 네가 아버지와 만널 수 있었던 것 처럼 어머니하고 만날 수 있는 날은 꼭 옵니다. 그 날을 위하여 힘껏 노력 하겠습니다.건강하고 기다려 주세요. 사랑하는 어머니.  

【2010년 10월에 수록됐음】

이시오카 토오루(石岡亨)씨의 형 이시오카 아키라(石岡章)씨의 편지

토오루,잘 지내고 있니?감기같은 건 안 걸렸지?건강 조심하면서 아무쪼록 장수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소중히 지내주길 바래.힘든 일도 많이 있을거라 생각되지만,토오루는 상냥하고 배려심이 있으니까 주위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있을거라 믿어.일본에 돌아올 날이 반드시 올 거니까 우리 가족들과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어 줘.토오루가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다함께 궁리하고 있으니까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 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있어주길 바래.  

너가 사라지고 30년이 되었어.토오루가 살고 있던 동네도 많이 변했단다.집 앞에 있던 밭 기억나니?밭둑에서 뛰어놀던 동내 아이가 날아오른 꿩에 놀라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2층 창문에서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지.그 밭에도 이제는 초등학교가 들어서서 어린 아이들의 건강한 목소리가 들려오게 되었단다.  

그리고,가까이에 있던 단층집 시영 주택도 새롭게 깨끗하게 다시 지었단다.하지만,토오루가 좋아했던 포플러와 가로수 길은 옛날 모습 그대로야.가로수 길을 보고 있으면 토오루와 함께 걸었던 때가 생각나.토오루가 돌아와 카메라를 손에 들고 또 함께 가로수 길을 걷게 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널 둘러싸고 가족들 모두가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간절이 바라고 있어.토오루도 일본에 돌아오면 뭐가 하고 싶은지 생각해 둬야 돼.  

꼭 일본에 돌아올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항상 건강조심하며 하루하루 지내길 바래.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을게.  

사랑하는 형이.  

【2010년 9월에 수록됐음】

마츠키 카오루(松木薫) 씨의 누나 사이토 후미요(斉藤文代) 씨의 메시지

카오르,후미요 누나야.북조선에 랍치 된지 30년이라는 너무 긴 세월이 흘렀어.

작년에 후지산에 갔다 왔는데 산막 주인이 아저씨가「꼭 돌아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카오르의 사진도 산막에 걸어서 간직하겠다고 하셨어.  

어머니께서도 병상에 누우신지 13년,카오르의 귀국만을 줄곧 기다리고 계셔.몇 번이나 위험한 순간이 있었지만,한번만이라도 널 만나고 싶다는 그 마음만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계셔.가끔은 눈물어린 눈으로 나에게 뭔가를 호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셔.난 알고 있어.「카오르가 보고싶다.손도 잡고 싶다.후미야,부탁이니까 내 앞에 카오르를 좀 데리고 와 줘.카오르가 좋아하는 도코로텐도 이젠 만들어 줄 순 없지만,카오르 얼굴만 보고나면 보고싶은 아버지 곁으로 갈거야.」라고 말씀하시는 듯해.「북조선 어딘가에서 고생하고 있지 않을까.구해줄 수도 못하고.어떻게 하면 되겠니?」라는 마음이 나한테도 절실히 전해져와.카오르의 인생은 대체 뭐였을까.누나인 내가 대신 갔으면 좋았을텐데.지금은, 아직도 널 구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할 뿐이다.  

아버지 산소에 가면, 두손을 모아 「카오르를 도와 주세요.어머니와 만나게 해 주세요.부탁이에요.」라고 빌고 있어.  

아버지도 꼭 도와 주실거라고 믿고 있어.눈을 감고 있으면 아버지의 웃으시는 얼굴이 잊혀지지 않아.카오르가 태어났을 때야, 우리에게「아들이야!」 라고 기뻐하시며 몇번이나 이 말을 되풀이하셨지.  

그리고 올해는,카오르가 좋아했던 야구 말인데,큐슈가쿠인고등학교(九州学院高等学校)가 코오시엔에서 준결승까지 갔어.고등학생들이 하는 야구는 언제 봐도 좋아.학생들의 장래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훌륭한 어른이 될 걸하고 믿어.  

카오르도 일본에 있었으면,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하지만,일본에 돌아와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있단다.그리고,어머니와 카오르가 만날 수 있는 그 날까지 누나도 어머니 간병 열심히 하고 있을게.두 사람의 웃는 얼굴이 빨리 보고 싶구나.  

「가난해도 즐거운 우리 집」,누나는 이 말을 너무 좋아해.가족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던 그 때가 너무 그리워.친척들,노부히로,테루요,노리코,그리고 매형도 너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어.스페인에 가기 전에 야스노리 아저씨와 아이들과 같이 심었던 삼목도 쑥쑥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어.카오르가 돌아오면,다같이 산에 가서 큰소리로 「만세」하고 부르고 싶다.  

카오르,희망을 버리지마.꿈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고 몸조심하고.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강한 마음로 기다리고 있어줘.힘들 때는 이불 속에서 울어도 괜찮아.누나도 이불 속에서 울 테니까.하루라도 빨리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후미 누나.  

【2010년 9월에 수록됐음】

마츠키 카오루(松木薫) 씨의 남동생 마츠키 노부히로(松木信宏)씨의 메시지

카오루 형, 들려? 노부히로야. 2년 전쯤에 카오루 형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녹음한 이후 처음인 것 같아. 그 사이에 뭔가 진전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직까지도 형을 돌아올 수 있게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어쩔 수 없이 또다시 이렇게 근황을 간추려서 전하려고 해.  

어머니께서는 지난 3월에 88세의 나이로 미수를 그럭저럭 무사히 맞이하셨어. 어머니도 카오루 형이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어떻게든 힘을 내려고 애쓰며 병원에서 형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계셔. 그래도 어쨌든 나이가 벌써 여든 여덟이셔. ‘이제 더 이상 힘을 못 내겠다’며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어. 최근에는 음식도 굉장히 적게 드신다는 말을 듣고 나도 조금 걱정하고 있어.  

카오루 형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뭔가에 대해 계속해서 힘을 내는 일은 간단한 듯하면서 간단하지 않은 일이잖아.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어머니의 카오루 형에 대한 깊은 애정이 힘을 내게 만들고 있는 거라 생각해. 그냥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어머니의 집념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생명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카오루 형이 없어진 지 30년 정도 지났지만 형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식지 않으셨어.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 형은 사랑 받고 있는 거야. 어머니도 열심히 힘을 내서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만 더 견뎌줘.  

이는 어머니 본인도 물론이지만 곁에서 간병하고 있는 후미요(文代)누나와 병원 관계자 분들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야. 이 또한 카오루 형이 건강한 어머니의 모습을 봤으면 하는 바람과 그리고 어머니가 건강한 모습의 카오루 형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야.  

다른 누나들도 건강하며 카오루형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꼭 데리러 갈게. 일본정부가 데리러 갈 때까지 몸 건강히 있어야 해. 형은 의지와 인내심이 강하니까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아무쪼록 조급해 하거나 자포자기하지 말고 ‘반드시 데리러 온다’는 믿음을 갖고서 기다려줘. 북조선에 함께 있는 사람들도 일본에서 데리러 온다는 것을 믿으며 좀더 기다려줬으면 해.  

아침 저녁으로 추워졌어. 그쪽은 이제 곧 김장철이겠다. 추운 겨울을 맞이해 아무쪼록 몸 건강히 기다려야 해.  

【2010년 10월에 수록됐음】

아리모토 케이코(有本恵子)씨의 어머니, 아리모토 카요코(有本嘉代子)씨의 메시지

케이코,잘 지내니?엄마야.케이코가 북조선에 랍치된 올해로 27년이 되는구나.정말 긴 시간이 흘렀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매일,뭔가 할일이 있을 때는 잠시 잊을 때도 있지만,잠시라도 손이 비면 케이코 생각이 떠올라 너가 어떻게 하고 있을려나하는 생각만 하며 지금도 기다리고 있단다.

너가 사라지고 27년이나 지났으니 여기도 많이 변했단다.하지만,케이코가 살았던 하쓰미야 거리는 지진으로 인해 재해는 있었지만 집들은 그다지 무너지지 않았어. 약간 부서진 곳도 있었지만,정말 예전 그대로의 모습은 남아 있단다.그러니까,뭐라고 하면 될까?정말 하루하루를 케이코 생각만 하며 지내고 있어. 케이코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하며 아이들도 많이 컸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이쿠코 아이가 올해로 23살이 되니 케이코 아이들도 그 정도 되었겠지?그러니까,아이들의 성장을 기대하며 항상 총명한 케이코니까 잘하고 있을거라 엄만 믿고있어.어쨌든,케이코가 하루하루를 너무 고민하면서 지내지 말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지내길 바래.

그리고,가족들이야기인데,친척아줌마 들도 전에 말한 것처럼 히루코 아줌마 다리가 안 좋으신 거 빼고는 다들 건강하셔.맛짱 아줌마는 요즘 아주 건강해지셔서 나보다도 걸으시는 게 빠르시단다.엄만 올해 3월에 다리가 안 좋아서 수술을 했는데 아직도 약간 걷기가 힘들어.하지만,몸은 건강하니까 지금도 여전히 체조하러 가곤 해.동내 근처 시민 운동장이 지진 후에 깨끗한 공원으로 돼서 여기 시민들이 거기서 조깅을 하거나 산책도 할 수 있는 좋은 길이 생겼어.그래서 엄마도 거기를 산책하거나 변함없이 오사다 신사에 체조하러 다니고 있어.

그러니까,가족 모두 정말 건강하게 지내고 있고 이쿠코가 잘해 주니까 전혀 외롭진 않아.나오코도 같이 있으니까 외롭다는 생각은 전혀 안들어.하지만,케이코 생각만은 머리에서 떠아지 않네.하루라도 빨리 돌아올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어.

에미 아이들도 제일 막내가 초등학교6학년이고 제일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해 들어갔어.그리고,케이코가 런던에 갔을 때 마사코 뱃속에 있었던 아이가 올해로 벌써 27살이 된단다.그리고,내년 초에는 벌써 결혼을 해.그러니 케이코가 보면 얼마나 놀랄까.다들 정말 착한 아이들이야.마사코 아이들도 3명이 다 딸인데 참 착해서 히루코 아줌마를 얼마나 잘 보살펴 주는지.그러니까 케이코는 아무 걱정 안해도 돼.

하루라도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일본정부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우리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도라도 엄만 너가 꼭 돌아올 거라고 믿어.그러니까 아무쪼록 몸 조심하해.병이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앞으로도 항상 건강조심해야 돼.아이들 성장도 기대하고 있을게.엄마도 힘내서 절대 케이코가 돌아올 때까지는 포기하지 않을거야.일본 국민들 모두 우리들에게 많은 협력을 해주시고 계셔.항상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시는 분들도 계셔.힘내라는 편지야.그것 때문에 일부러 집까지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셔.일본 국민분들이 너무 잘해 주시고 계셔.이런 점이 일본의 좋은 점인 것 같아.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엄만 학교에 들어가서 선생님들께 많은 걸 배울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단다.이렇게 좋은 일본에 케이코가 하루라도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테니까 케이코도 너무 고민하지 말고.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즐기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길 바래.

그리고,몇번씩이나 강조하지만 몸만은 아프면 안돼.절대 병같은 거 걸리지 말고.엄마도 매일 아침마다 집에 있는 신당물을 바꿔가며 그 앞에서 기도하고 있으니까.절대 케이코는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을거라 믿고 있어.그러니까,케이코도 힘내고,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있어야 해.또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거니까 앞으로도 힘내.엄마도 힘낼 테니까.

【2010년 9월에 수록됐음】

아리모토 케이코(有本恵子)씨의 아버지 아리모토 아키히로(有本明弘) 씨의 메시지

케이코,아까 엄마가 말한 것처럼,케이코 일은 일본 나라도 전부 다 알고 있단다.케이코 외에도 북조선에 랍치당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일본 정부는 북조선에 대해 정부방침으로서 랍치와 핵,미사일,그리고 북조선이 일본에 요구하고 있는 과거 청산,과거 배상이라는 것을 총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어.이런 방침으로 일본정부도 노력하고 있어. 그 방침들을 역대 총리들이 끊임없이 북조선에 메시지로 보내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란다.북조선에 있는 너에겐 그런 정보가 절대 귀에 들어갈 리가 없겠지만,북조선 고관에게는,이미 그런 메세지를 일본이 계속 보내고 있으니, 일본의 생각이 랍치피해자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된다고,차라리 돌려보내서 일본과도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북조선의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느꼈을 때 랍치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거라는 그런 상황에 놓여져 있어.이런 사실이 있다는 걸 이 메시지를 듣고나면 케이코도 알아두길 바래.

아빤 여기까지 오기까지 20년간 줄곧 정부에 계신 분들,그리고,정치가 분들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해왔어.아빠가 하는 이야기는 북조선이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분명히 랍치문제는 해결될거라고 일본은 생각하고 있다는 거야.그 날이 올 때까지 몸조심하면서 건강하게 있어주길 바란다.이거 하나만 케이코에게 전하고 싶다.그럼,잘 있어야 한다.

【2010년 9월에 수록됐음】